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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 읽기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1959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의대 졸업 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신 김혜남 작가님의 책입니다. 작가님은 2001년 43세 되던 해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22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진료와 강의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열권의 책을 쓰셨어요. 2014년 병의 악화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셔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작가님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프로이트가 말한 정상의 기준에 따르면, 사람은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즉,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 가지고 있으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어요.

 

작가님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아쉬운 건 없는지, 후회되는 건 없는지 물었다고 해요.

살아가는 데 있어 걱정이 별 도움이 안 되듯, 후회 또한 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든 다 잘해 내려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방치해 두었던 나 자신을 챙기며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15쪽)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내 준 숙제는 지독하게 안 했는데, 정작 누구도 제 인생에 시키지 않은 일을 숙제처럼 받아들고는 행여 해 내지 못할까 조바심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대체적으론 관성으로 생활하면서 숙제하듯 사는 삶을 잊곤 합니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면 일어나 씻고 옷 입고 출근하는... 일상의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에 나로 산다는 것이 매몰되어 있는 것이죠.

 

학창 시절 숙제 이야기를 꺼낸 김에... 누가 무언가를 시키면 갑자기 그 무언가가 싫어지는 경험. 저는 과거에도 했곤 현재에도 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는데 명령을 받으면 그 주도권을 남에게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누군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거죠.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61쪽)

 

상담을 받으러 오는 환자 중에 사업에 실패한 뒤 무기력한 삶을 살며 이생망이라고 한탄하는 40대 남자가 있었대요. 작가님의 어떤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의사 선생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보자'는 식으로 상담이 제자리를 맴돌았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만약 아들이 당신처럼 자라서 지금 당신의 위치에 서 있다면 뭐라고 말해 주고 싶으세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아들한테는 그렇게 말해 줄 거라면서 왜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가혹한가요? 당신이야말로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잘 해 오다가 잠시 일이 안 풀려서 어려운 것뿐인데..." 나는 그에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했다 (60쪽)

현재 자신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을 '지식적 통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식적 통찰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해요.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끼며, 그간의 슬픔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오는 '감정적 통찰'이 있어야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당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현재까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 온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분명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다. 과거의 슬픔을 인정하고 슬픔을 이겨 낸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79쪽)

구로야나기 체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산다는 것은 죽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목적은 바로 우리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나하나 차근히 배워 나간다. 지나가 버린 것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맞아들이는 법,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법, 그리고 인생의 작은 행복을 느끼고 즐기는 법을 (127쪽)

 

'호아킴 데 포사다'와 '엘렌 싱어'가 쓴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은 후 더욱 확증 편향이 심해진 저의 '만족 유예' 습관 때문일까요. 저는 저의 일상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를 늘 생각하고, 미래의 조금 더 큰 만족을 위해 현재의 인내를 기꺼이 지불하는 인간이었어요. 저는 '소유'를 위해 매일 저를 소진하는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인 거죠.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느니쉬'의 말이 저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도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는 당신에게 삶과의 연애를 권한다. 삶과 연애해 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모두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70쪽)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청년의 시절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상의 세세한 부분에 감탄하는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생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웃어 넘기는 여유와 포용력을 가진 따뜻하고 유쾌하고 유머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길을 걸을 때 매일 똑같은 길로만 걷지 말고, 한 번쯤은 새로운 길로 가 보길 권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한 번쯤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라. 친구를 만날 때도 늘 가던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만나 보라. 그리고 뭐든 재미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결과와 상관없이 한번 시도해 보라.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수없이 해 본 사람과 매일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사람의 내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싶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하고 웬만한 일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얼마나 값진지를 알기 때문이다 (233쪽)

 

사람을 믿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로 한계 설정을 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돈 거래는 하지 않는다라는 한계를 두면 친구로써 돈을 빌려주지 못한 미안함도, 빌려준 돈을 늦게 받거나 받지 못하는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얼마의 돈을 기꺼이 주는 것까지만 하면 됩니다.

꽃은 활짝 피고 나면 시들 일만 남게 되고, 달은 꽉 차게 되면 기울 일밖에 남지 않는다. 활짝 피기 전이나 꽉 차기 전에는 그래도 마음 속에 기대와 동경이 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르 두어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212쪽)

친밀함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흔히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가까울수록 더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해야 해요.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고, 자존심을 할퀼 수 있는 말을 피하며, 신뢰를 지키고 나의 모든 상황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밀함이란 외로운 이 행성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니 그것을 방치하지 말고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 꽃이야말로 우리의 보잘 것없는 인생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213쪽)

 

사람들은 '당신은 죽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하죠.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죽어가는 사람을 더 비참하게 하고 준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 1개월간 호스피스 병동에 함께 있었지만 아버지는 제게 어떤 추억이나 회한도, 유언이나 격려도 남기지 않으시고 떠나셨습니다. 정말 많이 서운하고 안타까웠지만, 그렇기에 저는 죽음을 어떻게 맞을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죠.

가장 안타까운 건 그렇게 서로가 뻔한 거짓말을 하는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할 시간을 놓쳐 버리는 데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자기 방식대로 맞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느끼며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 (270쪽)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면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하다가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마침내 이런 행동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이런 것이구나 를 깨닫게 되죠. 그간의 공포와 고통, 절망과 고독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는 순간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좋을 수가!" 이제 죽음은 끝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죽음을 인정하면 현재를 더 잘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순간순간의 삶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손을 잡고 나를 다독여주며 나의 공포를 나눠 가질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손에 내가 이제껏 들고 있던 삶의 바통을 넘겨줄 수만 있다면 죽음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속된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죽음은 오히려 내 인생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274쪽)

 

영화 '버킷 리스트'의 등장 인물 카터와 에드워드의 대화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어 하늘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하네. 그 대답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데, 하나는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라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항상 고민했지만, 반복되는 같은 질문만 되돌이하며 피곤한 삶을 더 피로하게 했을 뿐. 그 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주 조금이지만 생각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을 덮고 저에게 묻습니다.

'너는 네 인생의 기쁨이 무엇이니?'

'너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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