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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 읽기

이적의 단어들

싱어송라이터 이적님의 일상 속 단상을 모아둔 가벼운 책입니다. 단어에서 시작된 단편 산문집이라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짧게 짧게 끊어 보기 편한 글이었어요.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카페에 와서 랩탑을 켜고 가수 이적 님의 노래를 들으며 휴가를 보냅니다. 주변에 저 같은 분들이 더러 계시네요.

인류의 욕망은 과도한 착취와 무분별한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있어요. (우리의 체온이 1도 오르면 몸이 어떤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죠) 그 대가를 인간이 고스란이 감내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대가 지불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니 두려운 현실입니다.

중년에 접어들며 인생이 생각보다 형편없이 짧다는 것을 깨달은 두 명의 현자가 있었으니, 어느 맑은 봄날, 한 명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충실하게 살자"라고 결심했고, 다른 한 명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자유롭게 살자"라고 작정했다. 훗날 그 둘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첫 번째 현자의 제자들이 말하길, "스승님은 충실하게 사는 것은 남의 눈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두 번째 현자의 제자들이 말하길, "스승님은 자유롭게 사는 것은 남의 눈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15쪽)

모쪼록 절실하지 않은 필요를 굳이 찾아서 만들고 사고 쓰고 버리는 삶이 아닌, 나는 무엇이며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전, 정말 즐거운 술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있었다. 다들 놀라 왜 우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했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다시 오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걱정도 팔자다." "우리 인생, 시작에 불과하다." 소리치면서 건배를 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눈물에 일리가 있었음을. 그 너머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정신 번쩍 나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을 (187쪽)

 

스타가 된다는 건 물이 얼음이 되는 것과 같다고 노배우가 말했어요. 언젠가 상온에 노출되어 다시 물이 됐을 때 '아! 이 물은 예전에 얼음이었지'라며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그저 물일뿐. 진정한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 나로 보여지는 것들에 매여 있으면 삶이 초라하고 눅눅해집니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그는 완벽한 꿈의 베개를 찾는 원정에 돌입했다. 부드럽되 단단하고 푹신하되 탄력있는 베개를 찾아 온 세상을 누볐다. 여정은 날로 혹독해졌고, 어느 날부턴가 그는 녹초가 되어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곯아떨어지고 있었다 (101쪽)

투병중이셨던 아버지 가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방 근무를 자원했었고 이후 본사 복귀 발령이 나면서 기러기 생활을 한지 15년이 넘어갑니다. 숙면이 어려워 숙면용 보조영양제를 사 먹기도 하는데 저도 이제는 운동 혹은 노동으로 방법을 바꿔야겠습니다. 그리고, 금년 검진에서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어요. 베개를 사고, 운전용 경추 목받이도 샀는데요. 돌아보니 제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 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신발이나 옷만 샀었네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주어와 술어를 명료하게 하기, 의미 중복을 피하기, 문장을 가볍고 단순하게 구성하기, 말하듯이 쓰기 를 노력하고 있지만 이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말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문장은 '말장난이다' 라고 적는 편이 더 간명하고 힘 있다. 결국 멀쩡한 문장에 상투적으로 무의미한 단어들을 덧붙여 겉멋을 부린 말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25쪽)

글쓰기에도, 말하기에도, 옷 입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일에 클리셰를 제거해야겠습니다.

 

역대급 무역 적자, 검찰권 남용, 특활비 불법 사용, 국가안전망 붕괴, 언론 장악 등 현재 한국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상상도 못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있는데, 기득권에 편승한 언론은 함구를 넘어 미화하는 보도 일색입니다.

전염병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 그 아래 달린 두 가지 댓글. 하나는 "너희만 힘든 게 아니다." 또 하나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다른 마음. 후자의 마음을 지지고 싶다 (127쪽)

언론의 역할은 기득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며, 이는 소수 강자에 대한 다수 약자의 견제를 말합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언론의 부가적 사명일진데,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하고 댓글도 없애고 자발적으로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꼬리를 흔드는 꼴이라니...

 

작가님의 곡 중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있죠. 아빠가 된 뒤,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쓰게 된 노래라고 하는데요.

그날따라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는 풍선을 주여주고 솜사탕도 사준 뒤, "여기 조금만 있어. 금방 올게." 하며 사라진 부모.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고, 해가 뉘엿뉘엿 져도 엄마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화장실도 못 가고 몇 시간째 서 있는 아이에게 누군가 "네 부모 어디 있니?" 물으면 아이는 "금방 온다고 했어요. 이제 곧 올 거예요." 답하곤 입술을 깨물며 버텼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163쪽)

 

https://www.youtube.com/watch?v=2TK0eL50EkA 

어제는 2023 호주/뉴질랜드 FIFA 여자 월드컵 대한민국 vs. 독일 경기를 Live로 보았습니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은 했지만 우리 대표팀이 세계 2위 독일과 비겼어요.

지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만큼 김새는 일이 있을까. 승패를 모르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LIVE라는 네 글자가 TV 한 귀퉁이에 있고 없고는 긴장감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 우리는 왜 그토록 LIVE에 집착할까.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치고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라고 느끼는 우리는, 그 아슬아슬한 불가지성의 터널을 지나버린 과거의 일 따위엔 이미 관심이 없는 것 아닐지. 그래서 스포츠 중계는 생방송이 필수고 가수는 라이브 콘서트가 필수다. 펄떡펄떡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 라이브 하고 싶다 (169쪽)

아차! 그리고. 인기도 없고 지원과 기반도 약한 국내 여자 축구 여건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 축구 여자 대표팀 여러분, 충분히 잘 하셨고, 수고 많으셨고, 자랑스럽습니다.

 

자식들이 온라인몰에서 사서 보내온 씨앗으로 감자 농사를 지으신 장모님. 장에서 산 게 아니라 그런지 감자 맛이 별로라며 주신 감자를 앞에 두고 씨앗을 생각했어요. 알 수 없는 어느 창고에 편지봉투만한 크기, 얇고 빳빳한 비닐 봉지로 보관되다 택배 트럭을 타고 울퉁불퉁 여기저기를 거쳐 왔을 씨앗. 그 별 것 아닌 것이 실은 꽃을 품고 있었고, 장차 열매를 맺는 생명이었구나... 잠재력이라는 말을 이 이상 웅변할 수가 있을까... 내 안에 어떤 씨앗이 아직 남아 있을까...

 

작가님이 고수를 좋아하게 된 건 서른 살부터였다고 해요. 그 전엔 고수를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네요.

서른 살 때 보스턴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보라는 친구의 말에, '그래, 외국까지 왔는데 눈 딱 감고 마지막으로 먹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고수와 쌀국수를 입에 듬뿍 밀어 넣은 순간, 이 허브의 존재 이유가 온몸으로 납득이 되며 덜컥 사랑에 빠졌다. 어떤 맛은, 어떤 경험은 그러하다. 벼락같이 기호를 바꾸고 인생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두자. 완성된 취향 따위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뀔 때 젊다 (191쪽)

 

그러네요.

고수는 허브이고, 저는 청춘입니다.